최근 진격의 거인의 작가 諫山創씨의 극우 논란과 함께 야기된 진격의 거인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집단 보이콧 활동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나는 작가를 극우라고 볼 수도 없으며, 마찬가지로 '진격의 거인'이란 만화도 극우적인 작품으로 보기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번 글에서는 작가가 만화 속 인물인 픽시스 사령관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밝혀 논란이 된 '아키야마 요시후루'라는 군인에 대해서만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秋山 好古, 아키하마 요시후루는 일본의 군인으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참여하고 1916~1917년 조선주차군의 사령관으로 재임했던 인물이다. 그는 1924년 고향인 시코쿠 에히메 현으로 돌아가 호쿠요오 중학교(현 마쯔야마 고등학교)의 교장을 지내다 1930년 도쿄의 군 병원에서 당뇨로 사망했다.
요시후루의 삶에 대해서 찾아본 결과, 인간적으로 본받을 만한 점이 여러 있었다. 그는 말년에 에히메 현에서 중학교 교장을 지내며 "학생은 병사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학교의 군사교련을 줄이고, 학생의 견문을 넓히기 위해 당시 일본의 식민통치 하에 있었던 조선을 수학여행지로 정했다. 또 검소했으며, 자신의 공적을 애써 감추려 했다. 교장 시절 학생들의 "러일전쟁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육군대장의 군복을 보여주세요" 등의 바램도 일체 거절하고, 자신의 공훈을 자만하는 일이 없었다.
아키하마 요시후루는 사실 극우로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 사견이다. 아래 기사에서도 보듯, 국가주의와 제국주의적인 교육을 회피한 인물이다. 조선 아마 진격의 거인의 작가는 '인간적으로 본받을 점이 있다'는 점에서 이 인물을 존경하고, 픽시스 사령관의 모티브로 따온 것으로 보인다.
한/조선반도의 운명에 큰 영향을 끼친 러일전쟁 당시, 일본 군인중 아키야마 요시후루(秋山好古 1859-1930) 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일본 근대 기병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으로 메이지 유신 이후, 프랑스 사관학교에 유학하고, 기병 제1여단장으로 러일전쟁에 참전해 당시 만주에서 세계최강으로 불리던 러시아 기병대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 돌아와 승진을 계속해 육군대장이 되고, 나중에는 원수로 추대됩니다만, 본인은 자신이 군인으로써의 임무가 끝났다고 하며 원수직을 사양하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중학교의 교장 선생이 됩니다. 당시로써 이례적인 행동(육군대장, 원수 그리고 퇴임후에는 작위를 받은 귀족으로 유유자적한 생활등을 포기하고) 을 한 그는 자신이 겪은 전쟁의 잔혹상과 불합리성을 학생들 즉,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게 제대로 교육 시키기 위해 그 길을 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장군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국가주의나 제국주의적인 교육을 가능한 한 회피했으며, 당시로써는 당연한 ‘교련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등의 커리큘럼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 일화가 있습니다.
첫째, 제국주의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학생들은 ‘조선’에 수학여행을 가게 했습니다. 1920년대 수학여행을 갔다 온 학생의 기행문이 남아있습니다만, 거기에는, ‘나는 조선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수학여행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조각, 단청 등의 아름다운 궁전, 한학, 서예 등의 수준 높은 문화를 가지고 있고, 사람들은 예의바르며 당당했다.’, ‘이런 나라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식민지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던 듯 합니다.) 아키야마는 이순신 장군 연구등으로 조선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평소에도 조선 합병한 것에 반대 했다고 합니다. 조선,중국,일본이 근대화에 서로 도우고 힘을 합해 서양 제국주의 세력을 막아내야 한다는 당시 제국주의 일본내에서는 받아 들이기 힘든 주장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러일전쟁의 영웅인 그로써도 비대해진 신 군부의 독주 체제를 견제 할 수는 없었죠. 결국 그가 명예와 권력을 버리고, 교육자의 길로 들어선 것은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정상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세대로 키우기 위해서 였다고 합니다.
둘째, 관동대지진(1923년)이 일어났을때, 일본은 의도적 유언비어를 유포해, 많은 조선 사람들이 살해당합니다. 즉,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 등이었죠. 이 이야기는 아키야마가 살고 있는 지방(에히메愛媛)에도 퍼져, 민심이 흉흉해집니다. 이에 아키야마는 학생과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것은 유언비어이고, 조선 사람들은 그럴 사람들이 아니다. 여러분들은 흔들리지 말기를 바란다고 하며 그 지방에서는 조선인에 대한 범죄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돌아다니며 설득했다고 합니다. 아키야마가 당뇨병으로 사망한 것은 1930년입니다만, 그 다음해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키며 중일전쟁을 시작합니다. 근린국에 많은 피해를 끼치며 제국주의 파멸의 길로 달리기 시작한 것이죠. 그 선봉에 선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아베신조의 외할아버지 기시노부스케 입니다.
비록 젊어서는 군인으로 전쟁에 참가해 많은 죄를 지었지만, 나이가 들어 깨달았는지, 아니면 원래 그런 생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의 길`을 생각하고 자국과 이웃나라를 생각해 다음 세대의 교육의 길로 접어든 사람. 그리고 젊어서부터 얄팍한 권력욕에 사로잡혀, 사람들이 무작정 이웃나라를 증오하게 만들고, 자신은 한 나라의 리더 자리을 그냥 힘들다고 내던진 사람(=아베 신조). 그 사람의 외할아버지는 ‘사람의 길’을 생각한 사람이 제일 우려했던 파멸의 길로 내달린 사람이고…
위의 글에 대한 근거가 되는, 일본 위키피디아의 내용이다.
- 晩年は自らの功績を努めて隠していた。校長就任時に生徒や親から「日露戦争の事を話して欲しい」「陸軍大将の軍服を見せて欲しい」と頼まれても一切断り、自分の武勲を自慢する事は無かった。
- 中学校長時代は、「学生は兵士ではない」とし、学校での軍事教練を極力減らし、また生徒らの見聞を広めるために修学旅行先に当時日本の統治下にある朝鮮を選んだ 。
- 출처 : http://ja.wikipedia.org/wiki/%E7%A7%8B%E5%B1%B1%E5%A5%BD%E5%8F%A4
아키하마 요시후루가 조선에 대해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에 관련된 신문 기사 내용이다.
<鳳仙花>◆植民地支配憂いた秋山好古(よしふる)◆
司馬遼太郎原作のテレビドラマ「坂の上の雲」の放送が始まった。ここで描かれた日露戦争に至る経緯には異論もあるようだが、「明治」という時代を生きた若者群像を理解できるということで楽しみにしている。
そのドラマの主人公の一人である秋山好古(1859~1930)は、学校教師から軍人となった人物だ。日本騎兵の父と呼ばれ、日露戦争で活躍、陸軍大将にまでなったが、その軍人としての功績よりも退官後の人生が興味深いことを、先日NHK地方局がドキュメンタリーとして放送していた。
エリート軍人であり、1916年には朝鮮駐留軍司令官も務めた秋山は、元帥推薦の話をことわり、1924年、故郷の愛媛県松山に戻って中学校校長に就任した。その前年にあった関東大震災時の朝鮮人虐殺に触れ、「朝鮮の人が東京を焼くことなどありえない」と語ったという。そして当時としては異例の、日本統治下にあった朝鮮への修学旅行を実施した。
生徒たちによる「李王朝の建物の立派さは、朝鮮文化の水準の高さを示している」「日本は遠からずして植民地の問題を考えないといけない」などの感想文が残されているが、秋山が朝鮮の歴史と文化に感銘を受け、それを生徒に伝えようとしたことが推測される。
軍国主義が進み、朝鮮に対する差別意識が大きくなっていった時代、秋山はせめて教え子には、民族共生と平和を尊ぶ青年に育ってほしいと願っていたのかもしれない。
時代はその後、逆方向に進み、日本と韓半島の人々に多大な犠牲をもたらしたが、この秋山好古や、独立運動を支援した布施辰治弁護士、植民地教育を批判した上甲米太郎教師のような人物もいたことは記憶にとどめたい。
こういう人たちの存在が両国でもっと知られることは、意義あることだと思う。(L)
반면 이와 반대된 시각을 갖고 있는 글도 있는데, 신영우 충북대 교수가 쓰신 기사이다. 이 주장을 지지하는 다른 증거도 찾아보려 했지만, 이것밖에 없다.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참가했다는 것은 일본 위키피디아에서도 나오는 내용이지만, 정말 핍박했는지는 확실한 다른 근거가 없는 것이다. 진격의 거인 작가의 사과를 요구하는 글들은 모두 이를 증거로 하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는 악연으로 시작된다. 명치 40년 헤이그의 제2회만국평화회의에 이준열사 등이 밀사로 파견되었는데 이때 일본측 육군전문가로 참석한 아키야마 요시후루가 한국밀사의 활동 상황을 통보해와 고종을 핍박하게 만든다.
근위사단장을 역임한 그는 1916년 식민지 점령군인 조선주차군 사령관으로 온다. 『순종실록』에 망국의 왕 순종은 아키야마 요시후루를 인정전에서 영접하거나 고종이 덕수궁 석조전에서 맞이하는 기사가 나온다. 아마 고종과 순종은 헤이그에 있던 일본 첩자가 요시후루인지 몰랐을 것이다. 대장으로 승진하자 축하선물까지 고종과 순종이 각각 보내고 있다.
근위사단장을 역임한 그는 1916년 식민지 점령군인 조선주차군 사령관으로 온다. 『순종실록』에 망국의 왕 순종은 아키야마 요시후루를 인정전에서 영접하거나 고종이 덕수궁 석조전에서 맞이하는 기사가 나온다. 아마 고종과 순종은 헤이그에 있던 일본 첩자가 요시후루인지 몰랐을 것이다. 대장으로 승진하자 축하선물까지 고종과 순종이 각각 보내고 있다.
이러한 정황을 볼 때, 진격의 거인 작가를 우익 작가로 몰아붙일 만한 논거는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다. 평소 작가의 글이나 그의 작품에서 확연히 우익적인 성격이 드러난다면 이는 문제가 있다. 가령 군국주의를 미화한다던지, 혐한을 주장한다던지...이러면 문제가 심각하다. 그러나 작가는 분명 '평소에 존경하는 군인'을 픽시스 사령관이라는 작품 속 군인에 투영시킨 것일 뿐이다. 존경하는 이유 또한 '당시 세계 최강으로 불리던 러시아 기병대(거인)을 무찌른 업적'과 '검소하고 남에게 자랑하는 것을 꺼려했던 그의 품성' 때문일 것이다.
요시후루가 만약 우익이라고 하더라도 작가를 우익이나 극우로 몰아붙이기엔 그 논거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을 올바른 군인으로써 매우 존경하는데, 그렇다면 필자도 우익이라고 할 수 있는가? 본인은 우익이라고 보기 매우 힘든 사람이다(;;). 작가와 관련된 논란도 똑같다. 따라서 무작정 우익 만화가이기 때문에 보이콧한다는 주장은 매우 성급할뿐만 아니라, 근거도 부족한 주장이다.
또한, 만약 작가가 우익이라고 한다 해도 그의 작품까지 보이콧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필자의 사상은 '비판할 점은 비판하고, 칭찬할 점은 칭찬한다'라는 주의이므로, 작품에 인류의 보편 가치에 반하는 극단적 성향이 드러나 있지 않다면 보이콧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에 관해서는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가 좋은 예가 된다. 미시마 유키오는 군국주의자로, 자위대에서 연설을 하다 그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할복자살을 한 것으로도 유명한 작가이다. 그러나 그의 대표작인 '금각사'는 그의 사상과 충격적 자살과는 상관없이 탐미주의적 작품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1950년도에 미국에서 번역 출판되어 베스트셀러에 들었으며, 현대 일본 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과 다른 작품으로 미시마 유키오는 '설국'을 쓴 가와바타 야스나리보다 자주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자에 올랐다. 필자는 미시마 유키오의 사상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지만, 이와는 별개로 그의 천재적 문학성이 잘 드러난 '금각사'는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진격의 거인 논란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작가가 극우인지 우익인지도 확실하지 않지만, 만약 우익적이라고 해도 분명 잘 짜여지고, 극우적 사상이 들어있지 않은 만화인 진격의 거인은 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 부분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분들의 생각도 존중한다.
요시후루가 만약 우익이라고 하더라도 작가를 우익이나 극우로 몰아붙이기엔 그 논거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을 올바른 군인으로써 매우 존경하는데, 그렇다면 필자도 우익이라고 할 수 있는가? 본인은 우익이라고 보기 매우 힘든 사람이다(;;). 작가와 관련된 논란도 똑같다. 따라서 무작정 우익 만화가이기 때문에 보이콧한다는 주장은 매우 성급할뿐만 아니라, 근거도 부족한 주장이다.
또한, 만약 작가가 우익이라고 한다 해도 그의 작품까지 보이콧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필자의 사상은 '비판할 점은 비판하고, 칭찬할 점은 칭찬한다'라는 주의이므로, 작품에 인류의 보편 가치에 반하는 극단적 성향이 드러나 있지 않다면 보이콧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에 관해서는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가 좋은 예가 된다. 미시마 유키오는 군국주의자로, 자위대에서 연설을 하다 그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할복자살을 한 것으로도 유명한 작가이다. 그러나 그의 대표작인 '금각사'는 그의 사상과 충격적 자살과는 상관없이 탐미주의적 작품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1950년도에 미국에서 번역 출판되어 베스트셀러에 들었으며, 현대 일본 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과 다른 작품으로 미시마 유키오는 '설국'을 쓴 가와바타 야스나리보다 자주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자에 올랐다. 필자는 미시마 유키오의 사상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지만, 이와는 별개로 그의 천재적 문학성이 잘 드러난 '금각사'는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진격의 거인 논란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작가가 극우인지 우익인지도 확실하지 않지만, 만약 우익적이라고 해도 분명 잘 짜여지고, 극우적 사상이 들어있지 않은 만화인 진격의 거인은 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 부분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분들의 생각도 존중한다.
한국에서는 현재 대부분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작가 분이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논란은 일파만파 퍼지며 현재 작가의 글에 수천 개의 한국어 악플이 달리고 있다. 일본인은 꺼져라! 죽어라! 이런 글들이 가득하다. 처음에 일본 넷우익의 한국인 사칭으로 시작되었던 악플은 사태가 커져가면서 한국인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인한 악플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만행은 한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국제 망신이다. 일본의 넷우익과 똑같은 짓이다. '진격의 거인'이 좋아서 작가의 블로그를 방문하는 일반 독자들도 한국에 대해 실망감과 반감을 갖게 될 것이며, 작가도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며 한국 네티즌에 대한 안좋은 인식이 생겼을 것이 분명하다. 자신의 블로그의 댓글이 일본 혐오와 작가 혐오에 대한 것으로 가득한 것을 보면 어떻겠는가. 6월 13일에 올라온 글의 '이러한 일련의 페스티벌'이라는 표현도 이런 난장판을 보고 느낀 안좋은 감정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맹목적인 민족주의로 점철된 비난의 악플은 한국의 국격을 떨어뜨릴 뿐이고 상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당장 중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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