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2일 토요일

민영화의 성공 사례 살펴보기<독일의 우정민영화와 일본의 철도민영화>

민영화의 성공 사례 살펴보기

<독일의 우정민영화와 일본의 철도민영화>


독일은 1989년부터 민간의 우편사업 참여를 일부 허용하며 점진적으로 우정개혁을 추진했는데, 성공적으로 민영화를 완료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독일 우정민영화는 1990년 독일연방우정성의 산하 우편, 저금, 전화 사업을 3개의 특수지주회사로 분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독일연방우정성은 1990년 이후 해외 경영컨설팅사에서 최고경영자를 영입하여 수익성과 경영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전략들을 펼쳐 왔습니다. 프랜차이즈 계약을 편의점 및 주유소 등까지 확대하고, 다국적 물류회사인 DHL과 미국 3위 항공물류회사인 Airforce, 그리고 물류부문 시장점유율 세계 1위인 Excel을 인수하면서 세계 최대 물류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또한 비용 감축을 위해 엽서요금을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2배 가까이 인상하고, 직영 우체국 수를 기존의 1/5 수준으로 대폭 축소하고 업무자동화 등을 통해 전체 종업원의 1/3을 감원했습니다.

 일본의 경우, 현재 지역별 JR로 분할 민영화 되기 전 전국의 철도를 JNR(일본국유철도)라는 단일 공사가 운영하던 상태였습니다. 국철 시대의 최대영업거리가 1981년의 21,419km였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지만, 37 2천억엔에 달하는 막대한 채무를 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철도수송의 비중이 낮아지고, 신칸센의 건설 비용을 상당 부분 국철에서 부담하게 되었으며, 공공성의 문제와 정치가의 요구에 따라 지방교통선망을 확대시켜 나갔고, 사업분야가 철도운영에만 한정되어 경영수지 개선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영화가 진행되었고, JNR은 전국의 지역별 6개 여객운송회사(JR 큐슈, JR 시코쿠, JR 니시니혼, JR 도카이, JR 히가시니혼, JR 홋카이도) 1개의 전국 단일의 화물운송회사(JR 화물)로 분할되었습니다. 이 중 여객운송회사는 지역내의 철도기반시설과 차량을 소유하고, 시설과 차량에 대한 보수와 유지를 모두 담당하는 지역분할형이며, 화물운송회사는 선로를 자체적으로 소유하지 않고, 여객운송회사의 선로를 사용하며 선로사용료를 여객운송회사에 지불하는 상하분리형입니다.

6 JR로 분할된 뒤, 전국의 지역별 JR은 적자 지방선을 폐선 조치하거나 제3섹터 철도회사(지방자치단체와 민간기업이 지분을 출자해서 만든 회사)에 넘겼으며, 사철과 경쟁하기 위해 서비스 질을 높이고, 정시성을 더욱 기하는 노력을 했습니다. 여행업과 호텔 운영 등, 국철 시기에 하지 못했던 사업 다각화를 통해서도 재무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1987 4 1 JR체제 출범 전의 만성 적자 상태였던 경상수지는 JR 체제가 출범한 후, 안정적인 흑자로 전환했습니다.

  흑자경영의 원인은 다른 곳에도 있었습니다. 37 2천억엔에 달하는 국철의 부채는 25.5조엔을 국철청산사업단, 5.7조엔을 신칸센보유기구, 그리고 5.9조엔을 혼슈 3사의 여객철도회사(JR 니시니혼, JR 도카이, JR 히가시니혼) JR화물이 승계했습니다. 장기부채의 감소는 이자비용의 감소로 이어졌고, JR혼슈 3사의 운영은 더욱 안정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효율화와 합리화의 추진과 함께 인력을 줄일 수 있었던 것도 경영수지 흑자화에 기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민영화시 수요 부족으로 인해 적자경영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되던 JR 3도회사(JR큐슈, JR 시코쿠, JR 홋카이도)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1.3조엔의 경영안정기금을 마련했습니다. 이 경영안정기금으로 3사는 적자분을 보전하고도 큰 순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습니다.

 민영화의 폐해도 물론 있었습니다. 1,050명에 달하는 직원들을 해고한 것이 그것입니다. 또한, 버블 경제의 붕괴로 인해 국철의 장기부채액이 증가하고 청산도 잘 되지 않아, 국철청산사업단은 해산하고 대부분의 장기부채액이 국민 부담으로 전가되게 되었습니다. ‘JR 후쿠치야마선 탈선사고와 같은 대형참사가 발생하게 된 것 또한 민영화의 폐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0km/h 제한 구간에서 116km/h로 달리다가 열차가 탈선해 아파트에 충돌하여 승객과 승무원 107명이 숨졌고, 562명이 부상을 당한 이 사고는 이윤과 효율을 앞세운 경영이 근본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사철과의 경쟁에서 이기면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JR 니시니혼은 경력이 11개월 밖에 되지 않는 기관사를 배치했고, 열차 운행시간을 초 단위로 점검하며 기관사들을 압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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